로봇 기량 겨루는 장, 대회 시작하자 ‘한숨과 탄성’ 교차
과제 나오자 현장에서 직접 코딩하고
초등 저학년은 서로 ‘내가 1등’ 자신
“과학기술 인재로 성장하면 좋겠어요”
교실마다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이 각자 가지고 온 컴퓨터와 로봇을 열심히 만지작거리고 있었다. 오전 9시가 되자, 과제인 ‘각 종목별 맵’이 공개됐다. 참가자들은 대회를 시작하는 오전 11시 전까지 해당 과제에 맞게 자신의 로봇을 프로그래밍(코딩) 해야 한다. 참가 학생들은 바로 옆 교실에 마련된 대회 경기장에서 자신이 코딩한 대로 로봇이 제대로 움직이는지 점검하고 다시 수정하기를 반복했다.
9월24일 구로구 항동 유한공업고등학교에서 제17회 전국학생로봇경진대회가 열렸다. 한국학교로봇교육진흥회가 주최하고 구로구와 교육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등이 후원한다. 전국학생로봇경진대회는 청소년들에게 로봇산업에 대한 관심과 교육 효과를 높이기 위해 매년 개최하다, 코로나19로 중단한 이후 3년 만에 다시 열렸다. 창작부문 로봇창작, 로봇코딩부문 로봇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코딩, 무선조종부문 분리수거와 미로레이싱 등 3개 부문 5개 종목에 총 187팀, 200여 명의 전국 초·중·고등학생이 참가했다. 이동욱 한국학교로봇교육진흥회 사무국장은 “코로나19 이전에는 종목도 훨씬 많았고 참가 인원도 800명이 넘었다”며 “올해는 규모가 3분의 1 수준으로 줄었다”고 했다.
이날 대회에 참가한 학생들의 모습은 사뭇 진지했다. 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나자, 초등학교 1~2학년 학생들은 금방 친해져 서로 자신의 로봇을 자랑하며 놀기 바쁜 듯 보였다.
“자신 엄청 있습니다. 연습 때마다 100점 많이 받았어요.” 충남 홍성에서 온 양태양(홍남초 2)군의 또록또록한 목소리에서 자신감이 느껴졌다. 8살 때부터 무선조종을 배운 양군은 올해 분리수거 종목에 처음 참가했다.
소중한 로봇이 행여라도 부서지거나 고장 날까봐 단단한 상자에 담아 왔다. 양군은 “100점이 22번이나 나와서 오늘도 잘할 것 같다”고 했다. 역시 홍성에서 가족과 함께 온 박우상(홍동초 1)군도 “웬만하면 100점이 나와서 자신 있다”며, 거침없이 “1등 하겠다”고 했다. “어느 정도는 선생님이 만들고 어느 정도는 제가 만들었어요.” 서울에서 참가한 조현서(갈산초 2)군은 “로봇을 선생님과 함께 만들었다”며 “어제 밤새도록 연습해 자신 있지만, 1등 하고 싶은데 1등 못할 수도 있다”며 걱정했다.
저마다 ‘내가 1등 한다’며 자신감에 차 있는 1~2학년 학생들에 비해 자신의 실력이 어느 정도인지 대략 가늠할 수 있는 5~6학년 학생들은 신중했다.
“자신 없어요. 하지만 열심히 해야죠.” 전남 순천에서 온 김재현(신대초 6)군은 대회 공고가 난 7월부터 연습했다. 막상 대회장에서 많은 참가자를 보니 잠시 자신감이 떨어진 듯했다.
무선조종부문 분리수거 종목은 정해진 시간에 종이, 캔, 페트병을 분리구역으로 이동시키면 된다. 경기 시간은 1분으로 2회 실시해 높은 점수를 공인 점수로 인정한다. 초등학교 1~2학년, 3~4학년, 5~6학년으로 나눠 대회가 치러지는데, 학년별로 난이도가 다르다.
학생들이 만들어 온 로봇 모양은 대체로 비슷하지만, 조금씩 차이가 있다. 쓰레기를 밀어서 옮기는 데 적절한 형태가 있는가 하면 집어서 옮기는 데 더 적절한 형태도 있다. 이충기(58) 분리수거 종목 심사위원은 “로봇 모양도 중요하고 조종 기술도 중요하다”며 “전략을 잘 세우거나 동선을 잘 짜지 않으면 시간 내에 끝마치기 힘들다”고 했다.
“시간 내에 하려면 무척 바쁘죠. 방향 감각이 중요합니다. 초보자들은 로봇을 따라 다니면서 조종하고, 잘하는 아이들은 가만히 그 자리에서 조종합니다.” 이 사무국장은 “내가 로봇을 타고 조종한다고 생각하면 원하는 방향으로 움직일 수 있다”며 “하지만 어린 학생들에게는 쉽지 않다”고 했다.
전남 여수에서 온 유정훈(안산중 2)군은 자신을 “한국 로봇의 미래”라고 소개했다. 당돌한 만큼 자신감도 넘쳤다. 로봇알고리즘 종목에 출전한 유군은 “4년 동안 갈고닦은 실력으로 꼭 1등 하겠다”고 단단히 별렀다.
로봇알고리즘은 대회 당일 발표한 과제를 잘 수행할 수 있는 로봇프로그래밍을 현장에서 직접 설계한다. 이날 과제는 자율주행은 기본이고 부저 울리기, 등 켜기, 특정 문구 표시하기, 종이컵 이동하기 등으로 구성됐다.
연습과 프로그램을 만들어야 하는 두 시간이 훌쩍 지나고 오전 11시가 됐다. 본대회를 시작하자, 대회장마다 긴장감이 감돌았다. “준비됐으면 시작하세요.” 분리수거 종목 심사위원의 말이 떨어지자, 한 참가자의 로봇이 바쁘게 경기장 안을 돌아다니며 과제를 수행했다. 하지만 로봇이 밀고 가던 종이컵이 옆으로 나동그라졌다. 마음대로 되지 않자 참가자는 초조한 기색이 역력했다. 겨우 분리수거 구역으로 종이컵을 밀어넣었다. 하지만 모든 과제를 수행하기에는 시간이 부족했다.
“시간 끝났습니다.” 심사위원의 말을 들은 참가자는 “어휴~” 하며 한숨을 쉬었다. 돌아서 다시 대기실로 가는 모습이 힘없어 보였다.
미로레이싱 종목 대회장에서는 철없는 초등학생이 심사위원에게 자신의 결과를 물어 웃음을 자아냈다. 미로레이싱은 무선조종기로 로봇을 움직여 주어진 코스를 돌며 과제를 수행하고 최종 목적지에 도착하는 경기다. 앙증맞은 로봇이 경기장을 돌아다니는 모습이 재밌어 보였다. 경기를 마친 한 초등학교 1학년 학생은 심사위원에게 “선생님 저 몇 등일 것 같아요”라며 성급하게 등수를 물었다. 심사위원은 “2차 시기 또 있어요”라며 학생을 대기실로 돌려보냈다.
로봇창작 종목은 로봇 제작기획서와 제작 과정을 담은 제작 일지를 대회 전에 미리 제출하도록 했다. 이날 참가자들은 심사위원 앞에서 로봇에 대해 발표하고 시연했다. 두 명의 로봇창작 종목 심사위원은 작품과 제작기획서, 제작 일지를 꼼꼼히 대조했다. 참가자들과 질문과 답변도 이어졌다.
“사람이 들어갈 수 없는 환기구에 들어가서 청소하기 어려운 곳을 쉽게 청소해줘요.”
전북 군산에서 온 남매 ‘영재융합’팀은 환기구 청소 로봇을 만들었다. 오빠 조무경(산북중 3)군과 함께 온 조유경(산북중 1)양은 “환기구에 쌓인 먼지가 집 안으로 들어오면 건강에 해롭다”며 “로봇으로 깨끗한 환기구를 만들 수 있다”고 설명했다. 조양의 발표가 끝나자 한 심사위원은 “환기구 안은 어두워서 잘 보이지 않을 수 있으니, 카메라에 불도 들어오면 좋겠다”고 조언했다.
로봇창작은 코로나19로 어려움을 겪는 현실 때문인지 ‘로봇 팔’ ‘마스크 배포 로봇’ ‘면역제 살포 로봇’ 등 감염병 예방을 위한 로봇이 많았다. 전북기계공고 ‘석훈’팀이 만든 로봇 팔은 사람이 하는 행동을 그대로 따라 한다. 다른 사람과 악수할 상황이면, 대신 악수해 불필요한 접촉을 줄여 감염병을 예방한다. 서울 갈산초 ‘1등을 예상해’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로봇을 만들었다. 시각장애인이 코로나19 자가진단 키트를 로봇에 올리면, 진단키트 검사 결과를 확인해 감염 여부를 소리로 알려준다. 여기저기 돌아다니면서 집 안 소독도 한다.
이날 대회는 오후 1시께 끝났다. 대회장 밖에서는 가족들이 아이들을 기다리고 있었다.최종 수상자는 10월4일 발표했다. 로봇알고리즘과 소프트웨어코딩 종목 1위에게는 교육부장관상(대상), 로봇창작 종목 1위에게는 과학기술정보통신부장관상(대상)이 주어졌다.
로봇알고리즘 종목에서는 안재범(부흥고 1)군이 고등부 대상, 홍석우(부림중 1)군이 중등부 대상, 장연훈(홍남초 5)군이 초등 5~6학년부 대상, 김가율(홍남초 4)군이 초등 3~4학년부 대상을 받았다. 소프트웨어코딩종목에서는 김정훈(홍주고 1)군이 고등부 대상, 정수인(홍성여중 1)양이 중등부 대상을 받았다. 로봇창작 종목에서는 스키마팀(여수고)이 고등부 대상, 여선중 융합팀(여선중)이 중등부 대상, 제이제이비틀팀(갈산초)이 초등부 대상을 받았다.
이 사무국장은 “전국학생로봇경진대회는 전국 초·중·고 학생들이 그동안 갈고닦은 로봇 기량을 겨루는 장”이라며 “이 대회를 통해 로봇에 관심 있는 창의적인 청소년들이 미래 과학기술 인력으로 성장하면 좋겠다”고 바람을 표시했다.
이충신 선임기자 cslee@hani.co.kr
서울살이 길라잡이 서울앤(www.seouland.com) 취재팀 편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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